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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철학, 가장 조선인다운 조선인 율곡 이이의 철학사상

탁양현 지음 | 퍼플 | 2018년 12월 26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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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상세정보
ISBN 9788924059090
쪽수 167 쪽
크기 153 * 225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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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1장. ‘栗谷 李珥’는 누구인가



1. 性理學者 ‘율곡 이이’

‘李珥(1537~1584)’는, 朝鮮王朝를 대표하는 文臣이자 性理學者이다. 本貫은 德水, 字는 叔獻, 號는 栗谷이다. 관직은 吏曹判書에 이르렀다. 諡號는 文成이다.
西人의 領袖로 추대되었으며, 이언적, 이황, 송시열, 박세채, 김집 등과 함께 文廟從祀와 宗廟配享을 동시에 이룬 6賢 중 한 사람이다.
9차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조선왕조 최고의 秀才였다.
16세 때 어머니 申師任堂이 죽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한 후, 아버지가 계모 권씨를 들인 뒤,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훗날 그가 죽은 후에까지도,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려다가 환속한 사람’이라고, 東人과 南人이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그나마 李珥 정도의 강력한 보수주의자인 탓에, 승려 생활과 佛學에 대한 修學을 비판의 빌미로 삼는 정도에서 끝난 것이다.
그런데 예컨대, 尹?, 朴世堂 등은 朱子學에 대해 異見을 제기한다는 사실만으로 斯文亂賊이 되었으니, 율곡과는 좋은 비교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조선왕조에서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는 ‘性理學的 朱子學’에 대해서는, 字句 하나도 달라서는 안 된다. 그러니 그야말로 ‘이데올로기스러운’ 이데올로기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이데올로기스러움’은, 북한의 主體思想에서 여실히 재현되고 있다. 白頭血統과 勞動黨의 獨裁에 대해서는 한치의 어긋남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하략-

저자소개

저자 : 탁양현


2.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다

율곡은, 當代를 개국 이후, 오랜 안정과 50여년간 이어진 四大士禍의 혼란 및 을사사화 이후, 20여년간 이어진 외척정치로 인해, 사회전반에 걸쳐 모순과 부패가 심화된 상태로서, 시급히 경장하지 않으면 곧 土崩瓦解의 결과에 이르게 될 위기로 진단하고, 이에 구체적인 개혁의 두 축으로 貢案 개정과 軍政의 개혁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愛民, 畏民의 마음으로 세금과 ?役을 줄여 가볍게 해주며, 형벌을 신중히 하며, 절약하여 재물을 풍족하게 만들고, 백성에게 恒産이 있게 한 다음, 軍政을 닦음으로써, 興利除害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 삶을 즐기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율곡의 양병설은, 安民을 위한 그의 도학적 경세설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또한 양병을 위해 양민, 군사훈련, 인재등용, 교화를 다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양병설은 養民을 우선으로 하는 도학적 양병설이며, 군사훈련, 인재등용, 교화를 갖춘 精兵論이었으며, 輔國安民이라는 그의 衷情으로부터 나온 시의적절한 대책이었다.

李浚慶이 죽기 직전 朋黨의 弊害에 관한 遺箚를 올리자, ‘죽음에 이르러 말이 惡하다’고 공격하였으며, 이후 이준경의 처벌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후일 黨爭이 현실화하자, 스스로 크게 뉘우치고서, 東人과 西人 사이의 당쟁 조정을, 평생의 정치 이념으로 삼았다.
貢納의 폐단 是正策인 代貢收米法 실시를 주장하고, 병조판서로서 여진족 尼湯介의 침입을 격퇴한 후, ‘10만 양병설’을 주장해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명성을 얻었다. 이이는, 선조에게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여, 東人의 반감을 사기도 하였다.
그는 일본의 戰國時代는 종결될 것이며, 일본을 통일할 ‘사무라이’는, 일본 내 세력 내 갈등 완화와 국내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未久에 명나라나 조선을 침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그는 10만 명의 정병을 양성하여 일본의 침략에 대비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견해는, 동인에 의해, 왕을 현혹하기 위한 발언으로 치부되었고, 西人조차 그의 생각이 지나친 상상력과 허언이라며 호응해주지 않았다.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던 당시, 조선의 총 병력수는, 장부상으로는 30만 명이 넘었으나, 실제 전투 가능한 병력 숫자는 1,000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이이는, 1582년 이조판서와 형조판서를 거쳐,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여진족의 반란을 진압하였고, 大提學을 역임하고 右贊成에 올랐다.
이듬해 당쟁의 조정을 시도하였으나, 오히려 탄핵을 받아 일시 퇴직되었다가, 다시 이조판서가 되는 등, 반대파의 탄핵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경륜와 소신을 펼칠 만한 기회는 부족하였다.
그런데 이이의 ‘10만 양병설’에 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학자도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10만 양병설’은 당시 조선의 사회적, 경제적 능력으로 보았을 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사안이었으며, 그러한 한계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던 실무적 유학자인 이이로서는, 오히려 ‘10만 양병설’을 주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로 이이가 올렸던 상소문과 각종 글을 모은 문집을 살펴보면, 당대 다른 중신들도 즐겨 쓰던 養兵이란 글자는 나올지언정, ‘10만 양병’에 관련된 내용은 일체 나오지 않는다고 하며, 오히려 군축을 해야 한다는 상소문이 십만양병설 대신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 덧붙이기를, ‘10만 양병설’에 관련된 내용은, 후대에 세워진 율곡 이이를 기리는 비문에 처음으로 등장한다고 하며, 이는 율곡 이이를 숭배하던 후대 조선 유학자들이, 일종의 신성화를 노려 임의로 추가하였다고 한다. 이에, 후대에 행해진, 일종의 歷史美化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栗谷全書에 의거하여 살핀다면, 율곡이 평생토록 조선왕조의 유지를 위해 국방과 경제를 강조했음은 의심할 나위 없다.

-하략-

목차

▣ 목차 




제1장. ‘栗谷 李珥’
1. 性理學者 ‘율곡 이이’
2.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다
3. 엘리트 士大夫 가문에서 태어나다 
4. 親母 申師任堂과 庶母 權氏
5. 타고난 神童이며 빼어난 孝子였던 ‘율곡 이이’
6. 忠孝라는 통치 이데올로기
7. ‘牛溪 成渾’을 만나다 
8. ‘우계 성혼’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하다 
9. ‘退溪 李滉’을 만나다 
10. 理와 氣에 대해 논변하다 
11. 四端七情 論爭
12. ‘支配者의 道德’과 ‘被支配者의 苦痛’
13.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15. ‘니부어’의 ‘기독교 현실주의’ 
16.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진성’
17. ‘4가지 마음’과 ‘7가지 감정’
18. 理(이념)이 먼저냐, 氣(물질)이 먼저냐 
19. 朱子語類 이후 
20. 李滉과 奇大升
21. 李珥와 成渾의 四七論爭
22. 人心과 道心
23. 嶺南學派와 湖南學派
24. 尹元衡과 乙巳士禍
25. ‘良才驛 壁書 事件’과 丁未士禍 
26. 尹元衡이 鄭蘭貞을 첩으로 삼다 
27. 沈通源을 탄핵하다 
28. 西人의 領袖로 추대되다 
29. 虛禮虛飾을 비판하다 
30. ‘花潭 徐敬德’을 비판하다 
31. 下級武士 집안에서 태어난 ‘서경덕’ 
32. 獨學과 思索으로써 학문을 이루다 
33. 己卯士禍 세력의 몰락을 예견하다 
34. 仁宗이 短命할 것을 예견하다 
35. 고독한 은둔자 ‘서경덕’ 
36. 스승 없이 학문을 이룬 ‘서경덕’
37. ‘진보주의자 徐敬德’과 ‘보수주의자 李珥’
38. ‘花潭의 氣’와 ‘老子의 道’
39. 徐敬德과 황진이
40. 李滉과 曺植을 비판하다
41. 조선의 선비 ‘南冥 曺植’
42. 己卯士禍의 피해를 당하다 
43. 曺植의 스승은 아버지 曺彦亨이었다 
44. 政治官僚의 삶을 체념하다 
45. 曺植의 名聲이 알려지다 
46. 處士로서 삶을 마감하다 
47. 文定王后를 寡婦라고 칭하다 
48. ‘진보주의자 彫飾’과 ‘보수주의자 李滉’
49. 曺植의 수제자 鄭仁弘이 仁祖反正 때 처형당하다 
50. 曺植의 제자들 중에 義兵將이 많다 
51. 晋州民亂의 進步主義的 토대가 되다 
52. 냉혹한 人物評을 宣祖에게 올리다 
53.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하다 
54. 黨爭을 조정하려고 했으나 실패하다 
55. 兩是兩非論과 保合調劑論을 제시하다
56. 變法更張論을 주장하다
57. 책과 부싯돌 몇 개를 남기고 떠나다 

제2장. 朝鮮儒學과 栗谷哲學 

제3장. 栗谷哲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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